Exhibition

Local Arrangements : Klega solo exhibition

15 Nov 2014 – 6 Dec 2014

Corner Art Space

Seoul
서울특별시,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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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Mimesis or imitation seems hardwired into human behaviour. We learn by imitating; as children as much as adults we imitate to appropriate something. Learning a language is to imitate someone else's speech that we do not yet understand. We imitate the behaviour of our peers to be part of a group. Without this we could not communicate. We all do it, but it is not necessarily art. In Western art practice imitation became the defining concept within the discourse on art through Plato: art imitates the reality of objects but not the invisible 'ideas' (forms). Art creates illusions of objects which we cannot 'use'. Art thus is 'useless'.

Illusions are also untrue and therefore the art of illusion, just like the art of rhetoric, is not conducive to the good of society. What would we be without illusion? Would we be more or less deluded? Mime is also part of the experience of magic. By miming, the magician communicates with a spirit, commands the spirit to recount or explain a bad experience, or to exorcise it. The skill of the shaman is to become one with the spirit without remaining 'one'. Through imitation we become ourselves and the other. This alterity is learned by imitation.

When we begin imitating the believer and kneel down and pray we also begin to believe ourselves. Habits shape subjectivity. The magic realm is dominated by a mimetic practice which doesn't yet distinguish between the real and its copy. On the other hand, if imitation remains in the realm of fiction, it also maintains a distance from the reality we encounter.

This can give us the necessary space for a consideration of 'this' reality. It thereby gives access to the change of reality, providing us with the flexibility not only to adapt to (a changing) the external world, but also to find ways to express our inner world to one another. Fact and Fiction are both what is 'fabricated' by our mode of reason. In the end, we cannot escape our fabricating mind.

We may admire the skill of the artist in creating an illusion of 'some thing', which we 'recognize', despite the fact that we are already surrounded, to the point of madness, by masses of intrusive images, in advertising, TV, and on mobile phones - a relentless stream of communication designed to keep our attention and interest on the commodity.

We seem to be immersed in another world without the possibility of distinguishing illusion and reality, and the 'illusion' of art is drowned out completely. Imitating the popular pastime of appropriation (of public land for urban farming) this work fulfils the expectation of the image to capture and imitate the appearance of reality. Or more, the appropriation of that habit; I really do grow/produce cabbage, but only 'as if', in a gallery, where it should not be.

What is at stake, the habit, is not visible in the 'image': it is the fact of the appropriation itself, of something I do not own, the place where the growing takes place, the in-between, which is public and unused - the anarchy of the in-between which is too small to be regulated efficiently. Nevertheless, something is made. But is it real and not an image? It is only the image of the appropriation, and not a real appropriation of space, say the gallery, as I have been invited into this gallery, and for the allotted time have my allotment in it (there).

Maybe I only pretend this in order to temporarily occupy it as a field, a diagram of appropriation and mimetic parody. Maybe. The work also displays documents (images-illusions) of the original spaces, the in-between spaces, which are put to use to grow a produce, to make real food. Making itself useful is not how art operates, as it imitates appearances. (The image - s)Seeing - grasps and understands a practice of appropriation and utility, which is otherwise too close ('here') and therefore invisible, like the proverbial tree in the woods. Imitation creates the distance necessary to see things differently, like a different or unexpected caption under an old image.

This work remains within the in-between of the document, the image and the appropriation. It tries to 'grasp' rather than merely to imitate appearances. To 'grasp' is also to understand, to understand a reality through the distance created by 'imitation' and the relocation to the interstice between illusion and delusion. Art dwells in the in-between of the secured tenancy of expectations and the 'hard reality' of life. It hides in the in-between in order not to become too domesticated by living in the comfort of its tenancy. Only in its dis-location into the in-between where it is not at home, settled and appropriated as decoration, can it 'grasp' and translate the 'real' of reality. Artistic practice needs this movement of not being at home, of failure and futility.

미메시스, 혹은 모방은 우리의 행위를 고정화시키는 듯 보인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배운다. 말하자면,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아이들도 무언가를 차용하며 모방한다. 언어를 습득하는 것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누군가의 말을 모방하는 것이다. 우리는 집단의 일부인 다른 동년배들의 행위를 모방한다. 이러한 모방이 없다면 우리는 소통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모방을 기본으로 하나 예술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서구예술에서 모방은 플라톤을 거쳐 예술에 관한 담론 내에서 정의된 개념을 갖게 되었다. 즉, 예술은 보이지 않는 관념(형태)이 아닌 대상의 실재를 모방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우리가 “사용”할 수 없는 대상의 환영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무용한 것이다. 환영은 허위이며 환영을 위한 기교는 수사학의 기교처럼 사회적 선을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환영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는 미망에 빠지게 될 것인가? 무언극은 마술적 경험의 일부이다. 마술사는 무언의 몸짓을 통해 혼령과 소통하며 나쁜 경험에 관해 이야기 하거나 설명하고 혹은 몰아낼 수 있도록 혼령을 지배한다. 주술사의 기교는 혼령과 하나가 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모방을 통해 우리 자신이 되거나 타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질성은 모방을 통해 학습된다. 우리가 여느 종교신도들을 모방해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릴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이다.

습 관은 주관성을 형성한다. 마술적 영역은 원본과 복제물을 구분하지 않는 모방적 행위에 의해 지배 받는다. 반면, 모방이 허구의 영역에 속한다면 모방은 우리가 만나는 현실과 거리를 유지한다. 모방은 “이러한” 현실을 고찰하기 위해 필요한 공간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모방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의 변화로의 접근을 허용하며, 변화하는 외부세계에 적응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세계를 표현할 방법을 발견할 수 있는 적응성을 제공한다.

사실과 허구는 모두 우리 이성의 유형에 따라 조작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우리의 조작하는 마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광고 텔레비전, 핸드폰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대량의 거슬리는 이미지에 의해 – 우리로 하여금 상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고안된 무차별적인 소통의 흐름에 - 둘러 싸여 미칠 지경에 이미 이르렀음에도 “어떤 사물”의 환영을 빚어내는 예술가의 기교에 탄복해마지 않는다. 우리는 환영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에 몰입하고 있는 듯 보이며, 예술이 불러일으키는 환영 역시 우리를 철저하게 몰입시킨다.

(도시농장을 위한 공공용지의) 전용과 같은 대중적인 소일거리를 모방한 이 작품은 실재의 외형을 포착하고 모방하는 이미지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적어도 이러한 방식을 모방한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그럴 듯하게 길러서는 안될 장소인 갤러리에서 실제로 배추를 기른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행이 “이미지” 속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전용 자체, 내가 소유하지 않은 무엇, 이러한 식물의 자람이 일어나는 장소, 공공적이거나 사용되지 않는 사이의 공간에 적용되는 사실은 효과적으로 통제하기에는 너무 좁은 사이 공간의 무정부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인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실재인가? 이는 단지 차용된 이미지이며 공간의 실제적인 차용이 아니다. 말하자면 나의 작품이 초대되어 일정한 시간이 할당된 갤러리 공간에서 나 자신의 주말농장을 갖는 것이다. 나는 단지 차용과 모방적 패러디의 도형, 하나의 밭으로써 이를 잠정적으로 점유하기 위해 이 작품을 제시한다. 이 작품은 또한 농작물, 혹은 실제 식재료를 생산하기 위해 이용되는 원래 공간, 사이 공간에 관한 기록(이미지-환영)을 보여준다.

작품 자체를 유용하게 하는 것은 작품이 외형을 모방하듯 예술이 작동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이미지를 보는 것은 차용의 관행이나 유용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이며 이는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 너무 가깝고 그러므로 속담에 회자되는 숲 속의 나무처럼 보이지 않는다.

모방은 오래된 이미지 아래 첨부된 뜻 밖의 설명처럼 사물을 다르게 보기 위한 필요한 거리를 창조한다. 이 작품은 이미지와 차용의 사이 공간 내에 위치한다. 이는 단지 외형을 모방하기보다는 파악하고자 한다. “파악”하는 것은 또한 이해하는 것, “모방”에 의해 창조된 거리와 환영과 망상 사이로의 이전을 통해 현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예술은 기대의 획득된 차용과 삶의 힘든 현실 사이의 공간에 위치한다. 예술은 차용의 안락한 삶에 너무 길들여지지 않기 위해 이 사이 공간에 몸을 숨긴다. 단지 안락하지 않은 사이공간으로의 이탈을 통해 장식으로서 정착되고 차용된 예술은 현실의 실재를 “파악”하고 해석한다. 예술적 행위는 안락함이 아닌 실패와 공허함의 운동을 필요로 한다.
글_클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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